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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달리기는 멈출 수 없다

달리기는 본능이다. 단지 어느 시기부터 잠시 본능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에 끼어들듯이, 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다시 자연스럽게 달리게 될 것이다. 당신도 아직 달리기를 멈출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피부에 와닿는 산들바람에 충분히 만족하는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 굳이 따가운 햇살 속에서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적셔가며 달려야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따지자면 현대인이 달려야 할 까닭은 하나도 없다.

훨씬 빠른 교통수단이 있고, 다이내믹한 스포츠가 수두룩하며, 스트레스를 날려줄 놀이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숨을 헐떡이며 단조로운 동작을 이어가는 달리기는 지루하게 보일 수 있다. 관점을 달리하면 어떨까? 순수한 열정으로 트랙을 질주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불의 전차>를 보자.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갈등과 고뇌에 시달리는 청춘들이지만, 마침내 달리는 장면에 이르면 모두가 인생의 당당한 승리자로서 찬란하게 빛난다. 이는 단순히 영화적 포커스 효과 때문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그들 못지않게 달리기를 통해 스스로의 인생에 충만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어떤 교통수단이 줄 수 없는 만족감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큰 재미와 즐거움이 달리기 속에 있다고. 세상 모든 존재가 그렇듯, 존재들의 행동에도 반드시 이유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 진화의 중요한 과정이자 본능이었던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여태껏 어떤 연구도 달리는 인간을 제대로 해석해내지 못했으나, 어린 시절 술래잡기 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심장이 터지도록 달리고, 배꼽이 빠지도록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던 놀이의 근간에 달리기가 있었다. 가만히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보라. ‘왜?’라는 핑계로 억눌러뒀던 본능이 당신의 팔다리를 저절로 달리게 만들어줄 이유를 하나둘 깨워줄 것이다.

블루 컬러의 슬리브리스 톱, 네이비 컬러의 쇼트 팬츠, 핑크 컬러의 캘프 슬리브, 러닝화, 형광 컬러의 헤드밴드 모두 브룩스 러닝, 암밴드 벨킨, 형광 컬러의 워치 순토.

인간, 달리면서 진화하다

지구상 대부분의 동물이 네 발로 걷고 달리는 데는 자연계에서 살아남기에 좋은 장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다른 동물과의 동질성을 버리고, 네 발 사용의 장점을 모두 버리면서까지 두 발을 선택해야 했을까? 고고지리학에서는 인간이 처음 직립한 시기를 약 600~700년 전, 당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넓은 지역에 퍼져 분포해 있었던 때로 추정한다.

이런 환경에서 음식을 구하려면 이전보다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육체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경제적인 이동 방식을 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네 발의 안정성과 유용성보다는 두 발의 경제성을 선택한 결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서서 걷던 인간은 달리기를 시작한다.

걷는 것이 ‘이동’의 목적이었다면, 달리기는 긴급한 상황에서 이동 또는 생명 보호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먹잇감을 쫓는 과정에서도 달리기는 유용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국민대학교 체육대학 이대택 교수 역시 그의 저서 <인간 사냥꾼은 물위를 달리고 싶어 했다>에서 인류의 달리기에 대한 가장 궁극적 이유 중 하나로 ‘단백질 섭취’를 꼽았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고기, 뼈의 골수, 뇌 등과 같이 단백질이 풍부한 식량을 보장받는 길이다. 달리면서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비했지만, 그 결과로 에너지 투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졌다.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자연 생태계의 청소부였는지, 아니면 사냥을 통해 신선한 고기를 먹는 포식자였는지에 관계없이 달리기는 인간에게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해준 것만은 틀림없다. 이를 통해 인간은 큰 체구, 짧은 내장, 큰 뇌, 작은 이빨을 가진 신체 구조로 모습이 변화될 수 있었다.”

인간이 달리기 능력을 습득했다고 해도 그리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었다. 구조적으로 직립은 달리기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르지 못한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속도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달리는 전략이다. 이를 ‘지구성 능력’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다른 유인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독특한 능력이라는 게 이대택 교수의 설명이다.

“문제는 느리게 달리더라도 그 충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빠르게 달리는 동안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은 체중의 서너 배에 이르기 때문에 이런 충격을 완화시킬 장치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발바닥 중간에 충격 흡수 장치가 발달했으며, 충격을 감당해야 하는 발바닥뼈의 관절 면적이 넓어져 충격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인간과 체구가 비슷한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의 관절 표면적이 훨씬 넓으며, 무릎뼈, 대퇴골, 천장골이 크다는 것 역시 이런 논리를 뒷받침한다.”

달리기는 물리적, 역학적 측면만의 변화뿐 아니라 생리적인 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장시간의 운동은 몸속에서 많은 열을 생산하게 만들었고, 증가하는 체온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땀샘이 발달하고 대부분의 털이 제거된 것도 이유다. 체형도 체온 조절에 적합하게 조정되었다.

단백질 섭취의 증가에 따라 체형이 커진데 비해 상대적으로 팔다리가 가늘어졌는데, 체중당 단위체표면적을 늘려 발열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다. 결국 이족보행을 시작한 인류에게 있어 달리기는 생태계의 승자로 진화하는 가장 결정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핑크색 슬리브리스 톱, 그레이 컬러의 7부 카프리, 러닝화 모두 브룩스 러닝.

달리기 본능을 다시 깨워라

달리기는 빠름과 지속력이라는 두 기준의 최적점을 찾아가는 본질적인 운동이다. 지극히 단순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일상에서 기술이나 신념, 허위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면 결국 하나의 본질만 남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무한한 상상력과 그것이 창조한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 방법으로 근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활동력을 보이고 있지만, 인류의 모든 스포츠의 근간에는 달리기가 포함되어 있다.

먹이를 얻거나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물과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목록에서 달리기는 빠져버렸다. 결과적으로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뿐이다. 미국 원주민 중에 페놉스코트penobscot라는 부족이 있었다.

부족에 속한 모든 씨족 집단은 각 집단을 대표하는 청년들을 선발하여 무스와 사슴을 추적하는 축제를 벌였는데, 축제 전에 청년들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다고 한다. 성관계를 갖지 않았으며, 다리를 위로 들어올린 채 잠을 잤고, 가문비나무에서 추출한 껌을 씹지 않도록 감시받았다.

호흡 능력이 떨어지고, 달릴 때 고환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사슴에게 들킬 염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은 단순하다. 부족에서 가장 발이 빠르다고 인정받고, 최고의 전사라는 명예와 기쁨을 얻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모든 운동 경기의 세계 기록은 꾸준히 향상되었다.

이는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인류의 육체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란 달콤한 상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고 있다. 이미 기록 갱신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비해 영양 상태가 개선되고, 세계 인구가 지난 세기보다 네 배나 증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선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어디 이뿐인가. 과학적 조사를 토대로 한 혁신적인 훈련 방법이 도입되었음에도 왜 인류의 육체적 진화는 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을까? <우리는 왜 달리는가>의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평준화된 육체와 특정 운동 능력의 집중 강화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다양한 운동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현대 사회 속에서 인류 전체의 육체 능력은 하향평준화되어가고 있으며, 특정한 스포츠의 운동선수들의 경우 그 종목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만 키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햄버거를 만들고, 겨우 저녁이나 주말에만 훈련하는 사람은 최고가 될 수 없다. 또 일부 단거리 경주와 역도 경기에서 근육량을 늘려 운동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약물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는데,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는 지속적인 기록 달성 행진이 중단되고 말 것이다. 인류의 생물학적 잠재력이 규명되기도 전에 특정 능력을 더해주는 것은 세 번째 다리를 끼워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다리가 생긴다고 과연 기록이 좋아질까?”

오늘날 프로 스포츠는 페놉스코트 부족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과 명예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운동으로 얻어진 명예를 발판으로 효율적이고 집중적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부귀와 영광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운동 능력이 생존의 전부였던 원시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 스포츠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생존 외의 부가적인 행위에 대해 그 가치를 물을 수밖에 없고, 같은 이유로 달리기에 대해 “왜?”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어디에서도 현대인들이 틈만 나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달리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된 달리기 본능을 어떻게 가치로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달리기는 진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달리기의 이유나 목적을 진화라고 대답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생존도 아니고 명예, 영광, 부도 답이 아니다. 흔한 이유인 건강도 구차하게 느껴진다.

이유나 목적이 없는 본능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 매일 즐겼던 술래잡기 놀이를 생각해보라. 따지고 보면 달리는 것이 전부였을 뿐인데, 생존을 위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사냥감을 쫓던 원시적인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우리 모두는 그 단조로운 움직임에서 희열과 기쁨을 얻지 않았던가! <달리기 완벽 가이드Complete Book of Running>의 저자인 제임스 F. 픽스James F. Fixx는 저서에서 이렇게 결론내리고 있다.

“달리기의 효과는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특별하다고 여기는 상태나 정서가 우리로 하여금 달리기를 거부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우리가 달리기를 하면 곧장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만 년 전에 과일과 식물을 먹고,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심장과 폐, 근육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느꼈을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인류가 좀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고대인과 맺고 있는 유사성, 더 나아가 인류에 선행했던 야생동물과의 유사성을 거듭 주장하는 바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핑계로 쉴 만큼 쉬었지 않은가? 아직 술래잡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고 순수하며 본능적인 육체적 활동인 달리기를 통해 내면에 잠들어 있는 야생성을 깨워보자. 강인함, 생존력, 살아 있음 같은 현대인들이 평소 잊고 지내던 자아 가치를 깨닫고 열정적으로 다시 힘차게 달음박질을 시작하자.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달려야 하냐고? 글쎄, 먼저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들의 대답은 이렇지 않을까? “달려보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