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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멍 도르멍 제주

제주도 방언 ‘도르멍’은 달린다는 뜻이다. 2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달리기 위해 제주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 찼다.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22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2022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가 지난 6월 3~5일까지 제주에서 열렸다. 코로나-19 방역지침 제한이 풀리고 열린 국내 첫 트레일 러닝 대회로 올해는 500여 명이 참가했다. 100K 3일 스테이지 대회는 첫날 성읍민속마을 일대 32K, 둘째 날 하도해수욕장부터 표선해수욕장까지 32K, 셋째 날 가시리 마을 목장 내 36K로 이어지는 경기이다.
6월 5일에 열린 10K와 36K 대회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 목장 내에서 진행되었다. 가시리 마을은 따라비오름과 사슴이오름, 마을 목장 내 초원 지대, 돌담길 등 다양한 코스를 경험할 수 있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러닝 코스이기도 하다. 100K 대회 마지막 날이자 10K와 36K 경기가 열린 5일에는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려 36K 코스를 18K로 단축 운영되었다.
대회 내내 비가 내리는 최악의 날씨에서도 참가자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트레일 러닝 대회였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이 대회의 백미 중 하나로 가시리 마을 부녀회에서 제공하는 국수 한 그릇이 손꼽히는데 올해는 특히 비를 흠뻑 맞고 난 뒤 먹은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대회 중 힘들었던 순간들을 모두 잊게 해주었다는 후문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2022년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개요

대회 장소 제주도
대회 기간 2022년 6월 3~5일
참가 규모 500명
참가 부문 10K, 36K, 100K(스테이지 레이스)
영광의 수상자들 100K 남자 1위 이정호 2위 이규호 3위 고민철
여자 1위 김진희 2위 소연희 3위 박현선
36K 남자 1위 최성민 2위 현진환 3위 염주호
여자 1위 장미정 2위 박민 3위 백지은
10K 남자 1위 도미니크 애서턴 2위 이수원 3위 김대현
여자 1위 안기현 2위 김정애 3위 김민지

아름다운 고행, 그 3일의 기록, 100K 레이스 참가자 손준호

6월 3일 금요일, 첫째 날
대회 첫날은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성읍민속마을을 출발해 초반 마을길을 지나니 바로 현무암이 끝없이 이어지는 돌길이 시작되었다. 초반 주로에서 마주친 제주도 러너는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데 밟으면 흔들리는 돌길에서 발을 놀려 보아도 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현무암 길 끝에 반가운 임도와 영주산이 나왔다. 초반부터 시작된 종아리 통증이 풀리기를 기도하면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영주산 정상에 도착하니 제주다운 푸르른 장관이 펼쳐졌다. 하산길에 만난 자연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영주산 아래의 CP1에서 당분과 수분을 채우고 나니 이제 동검은이오름 등 첫날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비현실적인 초원과 숲길, 오름이 명상의 경지로 이끌어준다. CP2를 지나면 다시 영주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왔던 산을 반대로 오르는 동안 입에서는 곡소리가 났다. 게다가 산을 내려와도 현무암 밭을 다시 지나야만 골인 지점에 이를 수 있다.
현무암 걱정에 투덜거렸더니 “제주가 돌 아니면 뭐겠냐”라며 제주도 사람들이 말한다. 그 말에 수긍하며 현무암 밭으로 들어섰다. 마침내 돌밭이 끝났을 때는 모든 일정이 끝나고 완주라도 한 듯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먼저 도착한 선수들과 스태프들의 환대를 받으며 첫날 여정을 마무리했다.

6월 4일 토요일, 둘째 날
둘째 날은 로드가 8할, 트레일이 2할인 코스로 하도해수욕장부터 표선해수욕장까지 해안 도로와 올레 코스를 지난다. 제주에 오면 꼭 머무르는 종달리와 올 때마다 달리는 조깅 코스를 대회에서 만나니 반갑고 색다른 기분이다. 요즘 트레일 러닝 BGM으로 자주 사용되는 내 음악 ‘목화’가 이곳 목화휴게소에서 만들어진 곡이라는 것을 이 길을 지나는 러너들은 알고 있을까?
어느새 종달리와 시흥리를 뒤로하고 성산으로 향한다. 로드 러닝은 트레일 러닝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타나는 CP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제주도 러너 보선 씨를 만나 영상 촬영도 하며 같이 달렸다. 그리고 온평리를 지나 신산리부터 다시 혼자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나와 달리기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보냈다.
해안 도로와 올레길을 달리면서 처음 제주에 와서 올레길을 걷던 십수 년 전이 생각났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같은 길이지만 달라진 내가 느껴진다. 이날은 도착 지점에서 ‘제주RC’ 러너들의 응원을 받으며 행복하게 골인했다.

6월 5일 일요일, 마지막 날
전날부터 예고된 폭우에 주최 측에서 코스를 단축시켰다. 마지막 36K 코스가 18K로 변경되어 참가자들은 단축된 코스로 경기를 해야 했다. 선수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지만 아쉽기도 했다. 마지막 날은 10K, 36K, 100K 선수가 모두 만나는 축제의 장인데 날씨는 도와주지 않고 ‘미끄럽다’, ‘조심하라’는 목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렸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조랑말 공원에 도착했을 때 같은 팀원인 배주혁 씨를 만났다. 제주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니 편안하고 의지가 되었다.
출발 소리와 함께 풍력 발전기 앞 임도를 치고 나갔다. 엄청난 비와 안개, 러너들의 달리는 소리. 그 자체로 전율이 느껴진다. 임도길을 지나자마자 진흙탕이 나오는데 신발이나 발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푹푹 빠져가며 갈 길을 갔다. 어느새 달리기 초반에 겪는 종아리 통증이 지나갔고 몸이 훨씬 편해졌다. 덕분에 후반에는 속도를 좀더 올려 한두 명씩 앞지르며 달렸다. 비와 진흙탕이 오히려 발의 피로를 막아 주는 듯 컨디션이 좋아졌다. 끝이 다가올수록 끝이어서 좋다는 느낌과 이대로 끝나는 게 아쉬운 마음이 교차했다.
3일을 같이 지낸 러너들과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아름다워서, 아쉬워서, 힘들어서, 그래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길에서 혼자 많이 울었던 대회. 길이나 삶이나 매한가지라는 것을 이번에 또 배웠다. 그래도 100K 완주자의 자부심을 안고 제주를 떠남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