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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의 시간 너머 ‘연재 시대’

리드미컬한 리본과 몸짓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 체조 요정. 어릴 적 품은 꿈을 이룬 그녀는 영광스러운 기억을 안고 인생 제2막을 펼치며 살고 있다. 소리 없이 다부지게 체조의 내일을 리드하는 손연재. 그녀의 시간을 쉼 없이 좇자 마침내 ‘연재 시대’가 열렸다.

오랜만이라 정말 반갑다. 2019년부터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이 ‘리프 스튜디오’ 운영이라 들었다. 이 밖에 근황을 살짝 공개한다면?

은퇴 후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면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다. 내가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걸 찾으며 고민하다 지난해 리프 스튜디오를 열었다. 리듬체조의 대중성과 저변 확대를 위한 것으로 온 시간을 리프 스튜디오(리듬체조 스튜디오)에서 보내고 있다. 특히 설 연휴에도 성인 클래스 커리큘럼을 기획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을 만큼 바삐 움직이고 있다.

만인이 알다시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하 리우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가끔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 그때가 그리울 법도 한데….

아이들을 가르치며 리듬체조를 여전히 놓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선수 시절은 그립다. 아쉬운 순간과 눈물 나게 행복한 순간, 한없이 사랑받은 시간 등이 모두 추억으로 남아 때때로 꺼내 보고 있다. 울컥하기보단 오늘을 사는 힘이 돼준다.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등 국제 대회에서 본 손연재는 동화 속 요정처럼 곱고 아름다웠으며 눈부셨다. 특히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에서 리본으로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수로서 특별한 기억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인천 아시안게임’에 비할 바가 있을까.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그때의 잔상은 은퇴 후에도 바로 오늘의 일처럼 시야에 잡힌다. 가장 찬란하고 가장 뭉클한 추억으로….

리우 올림픽에선 고난도 회전에 해당하는 ‘포에테 피봇’을 장기로 ‘퐁세 피봇’까지 성공하며, 최후이자 최고의 열연을 펼쳤다. 혹여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국가 대표 리듬체조 선수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큰 무대인 ‘올림픽’이 주는 압박감과 부담감으로 무대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는 사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마치 인생의 마지막 공연처럼 자유롭게 뛰놀며 모든 걸 잊고 푹 빠져들고 싶다. 그 순간 내 몸의 에너지와 열정, 흐름만 온몸으로 느끼면서.

어찌 보면 다섯 살 때부터 체조선수로 살아왔다. 다른 꿈을 꿔본 적도 있나?

아무것도 모르던 꼬맹이 때부터 먹고 자는 시간 빼곤 ‘체조’만 하며 달려왔다. 다른 꿈을 생각해 본 적도, 여유도 없었다. 힘들어도 그저 좋았고 행복했다. 진심으로 온전히 내가 되는 순간은 리듬체조를 할 때인 것 같다. 그만큼 변함없이 리듬체조를 사랑하고 있다. 물론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꿈에도 한번 도전해 볼 것 같다.

2018년에 1회, 2019년에 두 번째 ‘리프 챌린지 컵’을 개최했다. 어떻게 ‘국제 주니어 리듬체조 대회’를 사비를 들여 열 생각을 했나?

선수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 국내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대회가 턱없이 부족했다.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비용도, 부담도 컸다. 이후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사랑하는 후배들이자, 우리 체조 꿈나무들이 도전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건 너무 안타깝지 않나. 이런 현실이 내내 마음에 걸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방법을 찾아 고심했고,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다 결국 ‘리프 챌린지 컵’을 열게 됐다. 이렇게나마 리듬체조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선 황홀하면서도 완숙미 넘치는 갈라 쇼 무대를 선보였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또 마치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휴식기를 가진 근육과 관절을 서서히 풀며 다시 매트에 서 연습하니, 은퇴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특히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 있으니 올림픽 때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며 요동치더라. 설레면서 흥분되는 긴장감, 딱 그것이었다. 특히 와주신 많은 분이 나의 리듬체조를 보고 환호하며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셨는데, 더없이 뿌듯하고 뭉클하더라. 그래서 결심했다. 리프 챌린지 컵을 진행하는 동안엔 무대에 꾸준히 오르겠다고.

팬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보기에 일에서나, 개인으로서나 날이 갈수록 농염해지는 것 같다. 스스로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손연재를 느낄 것 같은데 어떠한가?

리듬체조만 생각하고 지내온 선수 때와는 달리, 리프 스튜디오를 맡으며 전혀 다른 신세계를 경험해야 했다. 아직 배울 점이 많고 부족하다.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짐에 소소하게나마 감사하고 있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 대표로서 스튜디오를 책임지며 막중한 무게를 견디려 애쓰고 있다.

인생의 제2라운드, 리프 스튜디오는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나?

‘리프Leap’라는 리듬체조 동작이 있기도 하고, ‘높이 길게 뛰다’와 ‘뛰어오르다’, 깊게는 ‘도약하다’ ‘성장하다’란 의미도 있다. 즉 ‘리듬체조’가 또 ‘리프 스튜디오’가 한 단계씩 매일 점프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손연재 선생님에게 배우는 리프 스튜디오 커리큘럼이 궁금하다. 선수 때 받은 교육이나 훈련에 기반해 내용을 구성하는 건가?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 전문적으로 스킬을 연마하고 기량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두기보단 리듬체조를 신나고 재미있게 즐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크게 유아반, 초등반, 성인반으로 나뉘는데, 유아반과 초등반의 경우 기본적인 리듬체조와 수구를 활용한 동작을 배운다. 내가 리듬체조를 처음 접했을 때를 떠올리며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예쁠 수 없다. 또 성인반은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속해서 다져나가야 하지만, 간략히 소개하면 리듬체조의 아름다움을 감각적 표현으로 승화하는 ‘작품 클래스’와 몸의 유연성을 키우는 ‘스트레칭 클래스’ 등 리듬체조를 쉽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포부라면 더 많은 이들이 리프 스튜디오에서 자신을 되찾고, 리듬체조로 삶에 활력을 얻는 것. 내가 느끼고 이뤄온 모든 것을 나누고 싶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Yeonjae’s World를 보면, 새로운 ‘연재의 시대’에 흠뻑 빠진 것처럼 보인다.

특히 커버댄스 영상에서 드러난 힙한 스타일과 스웨그, 웨이브에 감탄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댄스 학원을 다니며 춤을 배우고 있다. 평생 리듬체조만 해온 터라 댄스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음악에 맞춰 안무를 짜는 공통점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으니 잠재된 끼를 끌어낼 수 있었고, 자아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찾은 것 같아 더없이 기뻤다. 춤출 때 찍은 영상을 리뷰해 보면 정말 그 순간에 밀도 있게 몰입한 듯 보인다. 실제로도 그렇다.

다음 영상이 자꾸 기대된다. 이렇듯 좋아하는 춤으로도 대중과 가깝게 소통할 계획인가?

처음 댄스커버 영상을 올렸을 때,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 놀랍고 반가웠다. 아무래도 은퇴 후 근황을 궁금해하는 분이 꽤 많았나 보다. 그래서 댄스커버는 물론 나만의 운동법이나 스트레칭, 리듬체조 등을 영상으로 만들어, 할 수 있는 한 대중과 많이 소통할 생각이다.

웰니스 아이콘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선수로 생활할 땐 어떤 운동을 주로 하면서 훈련했나?

리듬체조에 필요한 동작과 운동 위주로 매일 1분 1초가 아깝게 연습했다. 주로 발레 동작과 코어 강화, 재활,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며 기초 체력을 키우고, 리듬체조의 기술 동작을 마스터하며, 작품을 짠 뒤 음악에 맞춰 몸으로 익히는 과정을 거쳤다. 당시 이러한 일련의 루틴 가운데 필라테스의 매력과 효과를 일찍 알았더라면, 선수 생활에 여러 모로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편인가?

과거엔 결코 운동을 즐기면서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대회에 참가해 성적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의무 같은 일이었기에 큰 재미를 느낄 순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것저것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 보며 나와 가장 잘 맞는 걸 알아가고 있다. 또 수업 없이 스튜디오가 비는 시간엔 스트레칭을 하고, 댄스와 요가 등을 배우며 리드미컬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다.

선수로서 지켜온 식이요법과 체중 관리법이 있을 텐데, 현재 어떻게 달라졌나?

식이요법을 실천하던 과거와 지금의 식생활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선수로 활동할 땐 극단적인 식사 조절을 통해 몸무게를 줄이고 무대에 서야 했기 때문에, 규칙적이고 통제된 식단만 따랐다. 하지만 은퇴 후부터는 먹고 싶은 걸 자유로이 먹고 운동하며, 맛있는 음식이 주는 소소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오롯이 오늘, 손연재의 관점에서 아름답고 건강한 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만드는 일은 외적인 부분보단 내적인 부분이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지키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다 보면 외적인 아름다움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 같다.

이제 설날도 지나 2020년의 막이 제대로 올랐다. 올해 계획과 목표를 알려줄 수 있나?

2020년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뜨거운 해가 될 것 같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할 ‘리프 챌린지 컵’이 10월 중에 열릴 예정이고, 리프 스튜디오를 통해 풍부한 커리큘럼과 다양한 수업을 열띠게 준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내가 아끼고 사랑해 온 리듬체조를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운동이자 유희로 만들기 위해 노력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