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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차준환

스튜디오 안으로 차준환이 성큼 들어왔다. 큰 키에 자그마한 얼굴, 추위 때문인지 발그레해진 볼은 하얀 피부를 유난히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미 ‘차준환’이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그를 설명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토록 경이로운 몸짓을 보았나!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 차준환은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전 개인 최고점을 기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에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져 있었다. 개인 최고기록이자 한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것이다. 비장한 눈빛으로 매섭게 은반 위를 날아오르던 국가대표 차준환은 해가 떠오르면 승리할 것이라는 그의 프리 프로그램, 오페라 ‘투란도트’ 속 이야기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몸소 증명해냈다.



나의 사랑, 나의 올림픽

차준환은 올림픽이 주는 힘을 믿는다. 인생에 두 번 겪어본 올림픽, 그마저도 첫번째였던 평창 동계올림픽은 시니어 데뷔 겨우 1년 차에 치렀던 경기였다. 부담과 긴장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올림픽 출전을 염려할 정도로 좋지 않았던 발목 부상 또한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당시 겨우 18살. 남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 중 최연소였던 차준환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1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기록마저 당시 한국 남자 싱글 피겨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올림픽이 정말 좋아요. 저도 궁금해요. 왜 이렇게 올림픽이 좋을까요? 분명한 것은 올림픽이 주는 특별한 울림이 있다는 거예요. 세계선수권이나 사대륙선수권과는 또 다르게 새롭게 자극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물론 경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할 때 유난히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올림픽을 계기로 분명 더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차준환은 자신의 말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2018년 15위였던 올림픽 기록은 4년 후 무려 최종 순위 5위, TOP 5 안으로 성큼 뛰어올랐다. 포디움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 남자 피겨 스케이팅에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베이징에 도착해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전체적으로 푸르른 색과 분위기 때문에 평창 올림픽 때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어요. 빙질도 충분히 괜찮았고 스스로 최대한 좋은 느낌을 가지고 경기하고 싶었어요. 경기 전에는 부담감과 압박감도 있지만 그래도 저는 특히 올림픽 경기장에서 스케이팅하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해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단 한 번밖에 없는 저에겐 너무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차준환이 최종 순위 5위로 모든 경기를 마친 후 올림픽 공식 SNS 계정에는 5위를 했던 남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다음 올림픽에서 1위를 했다는 여러 가지 선례를 포스팅했다. 전 세계가 알고 있었다.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올해 22살 차준환에게 또다시 4년 후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차준환 본인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응원과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말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직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혼자 연습하면서 조금 더 주도적으로 훈련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그 부분을 안타까워해 주시기도 했는데 저는 생각보다 견딜 만했어요. 무엇보다 타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훈련한다는 것 자체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더 집중해 연습할 수 있었어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피겨 스케이팅을 좀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뚜렷하게 익혔고 훨씬 더 선명해졌어요.”

차준환은 4년 후를 말하기는 아직 너무 먼 일인 것 같다며 그저 계속해서 피겨 스케이팅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태하지 않고 게으름 없이 발전하는 차준환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피겨 안에 풍덩 빠지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음악을 들으면서 그 안에 캐릭터를 만들어요. 저만의 인물을 구축하고 감정을 담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 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어요.”

그래서일까. 차준환의 경기에는 다른 나라 선수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기술 피겨라고 불릴 정도로 고도의 점프 테크닉이 난무하는 달라진 피겨 스케이팅 환경 속에서 차준환은 유난히 더 돋보일 수밖에 없는 우아한 몸짓을 자랑한다. 종목 특성상 단점일 수도 있는 180cm의 큰 키와 긴 팔 다리까지 그를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는 그저 아름다워 보일 뿐이다. 남자 선수치고는 의상에 대한 관심도 높다. 우월한 신체 조건 덕분에 차준환이 입으면 남다르게 보이는 현상까지 초래한다.

“의상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니 놀랍고 또 감사할 뿐이죠. 의상을 처음 디자인할 때 프로그램 음악에 기반해서 제가 생각하는 방향과 콘셉트를 전달하고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함께 모아요. 사실 전문가인 디자이너 의견을 가장 많이 참고하죠. 거기에 제 의견을 조금 더해 함께디벨롭하는 정도입니다. 입기 싫어했다는 초록색 의상에 대해 조금 변명을 해보자면 ‘천사의 죽음’이라는 쇼트 프로그램 때 만들었던 경기복인데 그것도 나름대로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당시 함께 만들었던 블랙 의상이 곡에 잘 맞아 보였고 더 마음에 들어 선택했던 거예요.”

기회가 온다면 초록색 의상도 공개하겠다는 차준환은 누구보다 자신을 향한 주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이번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이터널 이클립스Eternal Eclipse 뮤지션의 곡은 팬들이 보내준 추천곡 중 하나였다. 어느 순간 시그니처가 된 실버 네크리스 또한 팬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차준환은 말한다. 경기장 안에서 차가워 보이는 표정과 프로페셔널한 스케이팅 속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런 관심과 애정을 기반으로 차준환은 은반 위를 더 가뿐히 날아오른다.

“경기장 위에서의 순간을 결코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아요. 결과를 두려워하며 경기에 임하면 불안감에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링크에 오른 순간 후회 없을 만큼 표현하고 즐기려고 해요. 저를 보는 모든 사람과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남김없이 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음악을 정말 많이 듣는데 이해도를 높여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예요.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단연 제 프로그램 음악입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프로그램 안에 풍덩 빠져 스스로 후회 없는 경기를 이끌고 제가 쏟은 에너지와 감정을 모든 이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경기 전 프로그램 음악을 꼭 듣는다는 루틴 빼고는 별다른 징크스도 예민함도 없다는 차준환의 대답을 듣자니 타고났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꽃봉오리가 만개하듯 펼쳐지는 은반 위의 유려한 곡선은 차준환만이 그릴 수 있는 유일무이함이 아닐까.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차준환은 선수로서 경기장 안에서 싸우는 것이 아닌 아티스트가 되어 무대를 영위하고 예술을 펼치고 있는 것 같다고.

“타고난 건 아닌 듯해요. 노력도 노력이지만 제가 스케이팅을 하는 그 순간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하게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피겨 스케이팅은 엄연히 스포츠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기술적인 면을 결코 간과할 수 없죠. 회전수, 점프 개수 등 높은 점수로 분류된 동작도 모두 예술 표현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리는 스케이팅 스텝과 표정 연기도 반대로 보면 선수의 기술이 될 수 있죠. 지금 제가 집중하는 것은 관점에 의해 분리된 기술성과 예술성,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것이에요.”

우문현답이었다. 피겨 스케이팅이 인기 종목으로 굳건히 자리잡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모두 보는 눈이 높아졌고 조금씩 더 엄격해졌다. 차준환도 이번 동계올림픽 프리 프로그램 첫 점프에서 예상치 못한 넘어짐이 있었다. 많은 이가 그 점프
를 성공했다면 포디움에 오를 수도 있었다고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경기의 주인공 차준환은 주어진 결과에 충분히 만족한다.

“워낙 긍정적인 성격이 회복력도 탄력성도 좋아요. 실수가 생겼거나 결과가 좋지 않아도 걱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빨리 떨쳐내고 해결책을 찾는 편이거든요.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훈련을 통해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차준환은 모르는 것보다 직면하는 것이 스스로 발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것이 시간상 더 효율적이라는 그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MBTI 성격유형 테스트에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취를 만끽하는 ENTJ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듯했다.

“많이 의아해하시는데 ENTJ가 맞아요. 저 승부욕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스물두 살 차준환. 시즌과 비시즌을 떠나 차준환의 일상은 스케이트로 빼곡하다. 가장 소중한 물건으로 스케이트를 고르고 매일 가지고 다니는 소지품을 묻자 다시 스케이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피겨 스케이팅을 감각 스포츠라고 설명하는 차준환은 감을 잃으면 안 되는 종목 특성상 오랜 휴식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시즌과 비시즌 큰 차이가 없어요. 일반적으로는 주 6일 아이스링크장에서 운동하고 하루를 쉬는데 그 하루도 집에서 쉬다가 혼자서 걷고 달리는 등의 지상 훈련을 할 때가 대부분이에요.”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휴식을 묻자 귀국 후 자가격리 기간이었던 2주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니 어떻게 보면 조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차준환은 지금 생활이 행복하다며 말을 잇는다.

“한국에서의 훈련이 좋은 것은 훈련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런 것이 저에게는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인 것 같아요.”

훈련이 힘들어도 외부 활동에서 오는 자극이 기량을 올리는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준다는 그에게 최근에 본 영화가 있냐고 물었다. 그는 22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올림픽 전에 영화 〈스파이더맨 : 노 웨이홈〉을 보았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제 인생영화로 꼽을 정도로 재미있었는데 이상하게 다음날 훈련이 정말 잘되더라고요. 그런데 더 신기한 건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이건 저만의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2차 선발전에서 굉장히 부진했고, 프리 경기가 끝난 그날 밤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날에 기량이 올라오더라고요. 아마 저는 마블 영화랑 무언가가 통하는 것 같아요.”

평소 마블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하는차준환의 눈빛은 피겨 스케이팅을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르게 반짝거렸다. 스튜디오에 들어온 순간부터 낯가림도 없고 예민함도 없이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강아지처럼 웃어주던 차준환. 그가 직접 정의하는 자신의 성격이 궁금해졌다.

“다정한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을 정말 좋아해요. 사실 저는 훈련 때문에 해외 체류기간이 길어 엄마와 단둘이만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또 지금까지 스케이트 하나만 집중하며 지내 와서 이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도 크고 좀더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호기심이 다분한 소년 같은 대답을 듣자 문득 그의 이상형도 궁금해졌다.

“털털한 사람이 좋아요. 하지만 이미 모태 솔로라는 건 소문이 다 났어요.”

안 믿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어 되묻자 그는 다시 장난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열린 결말이 더 재미있으니까요.”

차준환의 자리

귀국한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차준환은 2022 세계선수권 대회를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매일 다시 이어지는 훈련을 지속하면서도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틈틈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미는 중이다. 물론 그의 인기는 이전에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지나 차준환은 더 높은 곳으로 비상했다.

“가장 힘이 되어 주는 분은 아무래도 엄마예요. 어렸을 때부터 늘 모든것을 함께 했으니까요. 그리고 늘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게도 한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역배우로 데뷔했지만 우연히 배운 피겨 스케이팅에 빠져 엘리트 선수 생활을 시작한 차준환. 이제 그에게 전에 없던 많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연기했을 때 기억이 없지는 않아요. 문득 그때를 돌아본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저는 아직도 스케이트를 탈 때 가장 행복하고 피겨 스케이팅이 저를 증명할 수 있는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제 자리는 여기가 맞아요. 그리고 더 나아진 실력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뿐이에요. 변화가 있다면 선수로서의 발전일 것입니다.”

그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것은 비단 그가 역사를 써 내려갔기 때문이 아닌 다가올 그의 선수 생활에 어떤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하기도 했지만 두 번의 올림픽 모두 의미가 큽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부상이 심했지만 스스로 왜 피겨를 좋아했고, 왜 시작했는지를 깊이 느끼며 마음을 다잡고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두 번째였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이제 어떤 선수로 성장해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차준환은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원 바이 원One by One’을 꼽았다. 하나하나씩 성장해 나가겠다는 말을 이어붙이며 게으름 없이 성장하고 싶은 선수로서 당찬 포부를 밝혔다. 문득차준환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궁금해졌다. 좋아하는 스포츠인 피겨 스케이팅을 계속 할 수 있어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차준환. 그가 바라는 더 아름다운 세상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서는 관중들이 다시 가득 찬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이에요. 함께 서로의 기운을 나누며 교감했던 순간이 정말 그리워요. 그때가 돌아온다면 모두 조금 더 건강해지고 성장해져 있지 않을까요? 겨울이 지나도 차준환을 잊지 않고 지켜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내일이 곧 우리 모두의 내일이 될 테니까요.”